
글쓰기 루틴이 생길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시 글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학교 때 인문학을 전공했는데, 레포트가 3~4장짜리인 과제가 수두룩했다. 전공 서적을 펼쳐놓고, 이 문장 저 문장 이어 붙이면서 분량을 채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 느낀 건 글자를 줄이는 건 쉬운데 늘리는 게 너무 어렵다는 거였다. 할 말이 없으면 글이 안 늘어난다. 아무리 쥐어짜도 안 나오는 날은 정말 고역이었다.
그 기억 때문에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게 두려웠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 학교 때 느꼈던 그 감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시작했다. 블로그 수익화가 목표였으니까. 글이 없으면 블로그가 안 되니까.
200자부터 시작한 이유
처음부터 긴 글을 쓰려고 했으면 아마 진작에 그만뒀을 것이다. 블로그 글 하나가 보통 2,000자는 넘어야 한다는 걸 알고 나서 솔직히 막막했다. 대학 때도 그 분량이 어려웠는데, 지금 혼자 매일 쓴다고?
그래서 일단 200자만 쓰기로 했다. 카카오톡 긴 메시지 정도의 분량이다. 오늘 있었던 일, 생각난 것, 뭐가 됐든 200자. 퇴고도 없고, 잘 쓰려는 마음도 없이 그냥 썼다.
신기한 건 200자를 채우고 나면 자꾸 더 쓰게 된다는 거였다. 시작이 어렵지, 일단 쓰기 시작하면 손이 멈추질 않았다. 200자 목표가 어느새 1,000자짜리 글의 도입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글감은 핸드폰 메모장에 쌓아둔다
글을 쓰려고 앉았을 때 막막한 경우가 있다. 뭘 써야 하지, 오늘은 특별한 게 없었는데. 그럴 때를 대비해서 생각날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는 습관을 들였다.
글감은 거창한 데서 오지 않는다. 마트에서 줄을 서다가 문득 든 생각, 아이가 한 말 한마디, 오늘 해본 것 중에 ‘이게 생각보다 좋네’ 싶었던 것. 그냥 흘려보내면 잊어버리는데, 핸드폰을 꺼내서 두 줄만 메모해두면 나중에 글 한 편이 된다.
아이를 둘 키우다 보니 글감이 특히 넘친다. 육아를 하면 하루에도 예상치 못한 일이 수없이 생긴다. 아이가 처음으로 뭔가를 해낸 순간, 내가 버럭 화를 냈다가 후회한 저녁, 생각보다 효과 있었던 훈육 방법. 일반적인 일상보다 경험의 밀도가 훨씬 높다. 그게 다 글이 된다.
메모 앱은 뭐든 상관없다. 기본 메모 앱도 충분하고, 카카오톡 나에게 쓰기나 노션을 쓰는 사람도 많다. 중요한 건 떠올랐을 때 바로 꺼내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손에 닿는 핸드폰이 가장 빠르다.
아침 커피 시간이 글쓰기 시간이 됐다
루틴이 자리를 잡은 건 커피 루틴 덕분이다. 매일 아침 네스프레소로 라떼를 만들어 마시는데, 그 시간이 자연스럽게 글쓰기 시간이 됐다.
커피를 손에 들고 앉으면 메모장을 먼저 열어본다. 어제 적어둔 것, 며칠 전에 메모한 것. 그 중에서 오늘 쓸 것을 고르면 첫 문장이 훨씬 수월하게 나온다. 빈 화면 앞에서 막막한 게 아니라, 이미 씨앗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니까.
커피가 다 식기 전에 뭔가를 써야 한다는 작은 압박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외부에서 강제하는 마감이 없으니까 스스로 만들어야 했는데, 커피 한 잔이 그 타이머가 됐다.
쓰다 보니까 재밌어졌다
두려움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글 쓰는 게 재밌어졌다.
요즘은 AI가 글 한 편을 뚝딱 써준다. 주제를 던지면 그럴싸한 글이 나온다. 근데 그게 내 글은 아니다. 내가 직접 내 생각을 쓴다는 것, 내 경험에서 나온 말을 문장으로 만든다는 것. 그게 주는 즐거움이 따로 있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의 깊이가 달라졌다는 것도 느낀다. 20대에 레포트를 쓸 때는 할 말이 없어서 전공 서적을 베꼈는데, 지금은 살면서 쌓인 것들이 있어서 꺼낼 게 생겼다. 책도 더 읽게 되고, 일상에서 관찰하게 되고, 그러면 또 할 말이 생긴다. 분량이 안 늘어나서 고민하던 대학 시절의 나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선순환이었. 글을 쓰면 생각이 더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또 쓸 게 생기고. 처음엔 글감이 없을까봐 걱정했는데, 막상 쓰다 보니 오히려 쓰고 싶은 게 쌓이는 쪽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
예상 못 한 변화가 하나 있었다. 일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것들이 이제는 글감으로 보인다. 냉장고 정리를 하면서 ‘이거 글로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옷장 정리를 하면서 ‘이 과정을 순서대로 쓰면 누군가한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보내는 하루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됐다. 오늘 있었던 일이 내일 글이 된다는 걸 알고 나면, 하루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관찰하는 사람이 됐다는 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글쓰기 루틴을 만드는 실전 팁
목표 분량은 낮게 잡는다. 200자, 아니면 세 문장. 이것만 써도 오늘 할 일은 한 거다. 글쓰기가 부담이 되는 순간 루틴은 끊긴다.
글감은 떠오를 때 바로 핸드폰에 메모한다. 나중에 기억하겠지 하면 사라진다. 두 줄짜리 메모가 나중에 2,000자짜리 글이 된다.
다른 루틴에 붙여둔다. 커피, 산책, 아침 식사 후. 별도로 시간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결국 안 하게 된다. 이미 하고 있는 것에 붙이면 훨씬 오래 간다.
공개 여부는 나중에 결정해도 된다. 일단 쓰는 습관부터. 잘 쓰는 것보다 계속 쓰는 게 먼저다.
200자로 시작해서 지금은 한 편에 2,000자를 넘기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그냥 어느 날 보니까 쓰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이유가 된다.